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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인 전 대통령 사이버특보]‘린치핀 기술’ 없으면 기술 주권도 없다

By 한반도평화만들기    - 25-08-11 11:13    10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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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기술 굴기가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상하이 외곽 축구장 225개 규모의 화웨이 R&D 센터, GPT-4에 필적하는 딥시크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중국 제조 2025’가 더는 청사진이 아님을 보여준다. 특히 화웨이의 AI 칩 ‘어센드(Ascend)’ 시리즈의 약진은 중국의 기술 자립 의지가 얼마나 전략적인지를 드러낸다.

더욱 주목할 점은 딥시크가 단순한 민간 기술이 아닌, 사실상 ‘국가 전략자산’으로 지정돼 핵심 개발자의 이직 제한과 여권 통제 등 기밀 수준의 관리 하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AI 기술을 자동차·통신·금융·국방 등 전 분야에 활용해 사회 시스템 전체를 지능화하려는 국가 전략의 일환이다. 중국의 야망은 지상에 머물지 않는다. ‘삼체 컴퓨팅 성좌’는 우주 공간에 수퍼컴퓨터를 설치하려는 시도다. 이는 단순한 기술 추격이 아니라, 기존 질서와는 다른 ‘평행 우주’를 창조하고 자신들만의 규칙으로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려는 선언이다.


이 거대한 지각변동 속에서 우리는 미·중 양 진영의 ‘전략적 집게발’에 갇혀 있다. 한쪽에서는 중국의 기술 자립이 반도체·배터리·스마트폰 등 우리의 주력 산업을 잠식하고 있다. 화웨이는 어센드 칩, 하모니OS(운영시스템), 클라우드를 묶은 ‘레드테크’ 생태계를 통해 자립하고 있고, 한국 기업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삼성 스마트폰의 중국 점유율이 1% 이하로 떨어진 것은 변화의 서막일 뿐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 등을 통해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압박한다. 희토류·흑연 등 핵심 광물의 대중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산업의 숨통이 조여지는 형국이다. 요소수 사태에서 보듯, 중국이 공급망을 무기화할 수 있다는 리스크와 미국의 압박 사이에서 우리는 전략적 자율성까지 위협받고 있다. 이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낡은 외투는 벗어야 한다. 생존의 길은 단 하나, 누구도 한국을 배제할 수 없게 만드는 ‘전략적 불가결성’을 확보하는 것, 즉 기술 주권이다.

첫째, 초격차 전략을 전략적 린치핀(linchpin) 전략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단순한 기술 우위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 모두 대체 불가능한 핵심 기술의 독점적 공급자가 돼야 한다. 정부가 선정한 12대 전략기술에 분산 투자하기보다는 AI 반도체의 심장인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무기발광 디스플레이, 전고체 배터리 등 특정 린치핀 기술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양쪽 생태계 모두에 필수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둘째, 시스템 아키텍처와 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화웨이의 어센드는 개별 성능보다 클러스터 기술과 소프트웨어 최적화로 전체 성능을 극대화했다. 단일 부품의 초격차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다. 메모리 반도체의 우위를 넘어, 이를 연결하는 시스템, 소프트웨어, 플랫폼 역량을 키워야 한다. 엔비디아의 진짜 힘은 하드웨어가 아닌 ‘쿠다(CUDA)’에 있고, 화웨이는 ‘칸(CANN)’을 키우고 있다. 한국형 AI 반도체나 차세대 통신 기술도 이를 뒷받침할 개방적이면서 강력한 소프트웨어 생태계 없이는 세계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

셋째, 6세대 통신(6G), AI 윤리, 양자 암호통신 등 국제 표준이 미정인 신기술 분야에서 ‘규칙 제정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술 주권 전략은 정교한 인재 전략이 뒷받침돼야 한다. ‘K테크 패스’ 같은 제도를 통해 해외 인재를 유치하는 인바운드 전략과 함께, 우리의 우수 인재를 중국 등 경쟁국으로 파견하는 아웃바운드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

이는 인재들이 칭화대·베이징대·화웨이 등에서 직접 기술을 배우고 경험을 쌓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다. 이들은 중국 기술 생태계를 깊이 이해하고 미래 협력이나 갈등 완화의 ‘기술 브리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처럼 현지 언어·문화·기술에 정통한 네트워크는 어떤 외교 채널보다 강력한 자산이 된다.

향후 5년은 한국의 운명을 가를 골든타임이다. 중국은 기술 생태계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고, 미국은 기술 블록을 공고히 하고 있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우리는 양 진영 모두로부터 소외될 것이다. 정파를 뛰어넘는 국가적 합의와 담대한 실행, 기술 주권을 향한 결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명예교수·전 대통령 사이버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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